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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차
 
2023.
10. 14
(토)
카카벨로스 –2.1- 피에로스 –1.5- 발튀에 데 아바호 –3.2-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1.0- 부르비아 강 중세다리 –10.7- 트라바델로 –3.6- 라 포르텔라 데 발카르세 –3.0- 베가 데 발카르세 25.1㎞
(누적 :
619.6㎞)
 
9시간 10분
⦁ 갈리시아로 진입하는 가파른 오르막, 힘든 여정. 갈리시아 산맥의 변덕스러운 날씨 주의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전체가 스페인의 역사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유적지와 유물로 가득한 도시(관람시간 확보)
⦁ 숙소 : 베가 데 발까르세 Albergue EL Paso
 
⦁ 아침 : 알베르게, 점심 : 현지식, 저녁 : 알베르게

 

 

 

카카벨로스 →  피에로스  :  2.1㎞

 쿠아강 다리를 건너 피에로스까지 계속 도로를 따라 걷는다. 피에로스에서 도로를 따르는 길과 시골길을 걷는 길로 나뉜다 

 

 

▲ 아침 07:20분에 카카벨로스 숙소를 나선다. 잠시 거리를 지나자 성모 마리아 교회가 나타난다. 13세기 건축되었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후진(apse),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의 탑, 13세기의 성모 석상이 보존되어 있다

 

 

▲ 이어서 16~18세기에 건설된 쿠아강을 횡단하는 카카벨로스 다리를 건너고

 

 

▲ 18세기에 지어진 퀸타 안구스티아 성당. 내부에는 로코코 양식의 그림과 아기 예수가 카드 놀이를 하는 모습이 부조가 되어 있다고 한다

 

 

▲ 다음 마을 피에르소까지는 도로를 계속 따른다. 카카벨로스를 뒤돌아 보고 

 

 

▲ 어둠에 묻혀 조용하기만 한 피에르소 마을

 

 

 

피에로스 –1.5- 발튀에 데 아바호 –3.2-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  4.7㎞

 피에로스를 지나면 직진으로 도로를 따르는 길과 우측으로 시골길을 걷는 길로 나누어 진다. 거리상으로 엇비슷 하고 우측길은 발튀에 데 아바호 마을을 지난다. 비야프랑카까지 포도밭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 피에소르 마을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 하는 길과 우측 포도밭 길로 발튀에 데 아바호 마을로 가는 길이 있는데, 거리상으로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늘 그랬듯이 좀 더 한적한 시골길을 택한다

 

 

▲ 카카벨로스 시내에서 벌써 이 만큼 올라왔다. 완만한 오르막이라 고도를 높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 야트막한 포도밭 언덕을 넘어가자 발튀에 데 아바호 마을이다 

 

 

▲ 마을을 반원형으로 빙돌며 나아가고

 

 

▲ 이 곳도 여느 시골마을처럼 빈 집이 많다. 스페인이나 한국이나 시골마을 빈집이 넘쳐나는건 어쩔 수 없나 보다 

 

 

▲ 잠시 숲길을 지나고

 

 

▲ 야트막한 포도밭 언덕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 넓디 넓은 포도밭

 

 

▲ 지나 온 발튀에 데 아바호 마을쪽 전경

 

 

▲ 포도밭 언덕위에 그림같은 집이 한채 있다

 

 

▲ 창고가 있는 언덕을 지나자

 

 

▲ 비야프랑카 시내가 내려다 보이고

 

 

▲ 포도주 저장고(공장) 안내판

 

 

▲ 포도주 농장을 지나 유서깊은 도시 비야프랑카 시내로 진입한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  부르비아 강 중세다리  :  1.0㎞

 도시 전체가 스페인의 역사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적지 관람시간 별도 확보 요함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Villafranca del Bierzo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스페인 카스티야이레온 자치지역의 레온주에 속한 자치단체이다. 이곳에서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의 거리는 187km이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엘비에르소 지방에 속한다. 엘비에르소 지방은 레온주 북서쪽에 위치한다. 1991년 결성되었고 현재 38개 자치단체로 이루어졌다.

로마제국은 기원전 2세기에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했다. 그러나 그 전부터 이 지역에 사람이 거주했다. 이는 비야프랑카델비에르소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무기 등에서 확인되었다. 로마시대에는 카르케사라는 도시가 이곳에 있었다고 전해졌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8세기 말에 처음 형성된 듯하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퇴각 중이던 무슬림 군대를 아스투리아스 왕국군이 격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확립된 때부터 비야프랑카델비에르소는 순례지 가운데 하나였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서 813년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자 즉각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모여들었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발카르세 계곡을 지나 부르비아강으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거점이었다. 때문에 12세기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기록한 '칼릭스티누스 문서'에서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순례길 끝자락의 주요 도시로 언급되었다. 12세기 말 알폰소 7세는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를 누이인 도나 산차에게 분봉하였다. 이후 이 지역은 여러 귀족들 사이를 오갔다. 1486년에 루이스 피멘텔 이 파세고의 손에 들어갔다. 루이스는 딸만 두었고 그의 사후 영지는 사위이자 당시 나폴리 부왕이었던 페드로 알바레스 데 톨레도에게 넘어갔다. 이후 데 톨레도 가문이 대대로 영지를 다스렸다. 데 톨레도 가문의 통치하에서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17세기와 18세기에 번성했다. 데 톨레도 가문은 비야프랑카를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11명의 토착 귀족을 뽑아 행정을 위임하였다. 당시 비야프랑카 인구의 50%가량이 장인이었다고 전해진다. 비야프랑카는 교역 부문에서도 크게 발전하였다.

나폴레옹의 이베리아 침공으로 시작된 반도전쟁 때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는 격전지였다.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이 지역을 뺏고 빼앗겼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유물들이 사라졌다 1810년이 되어서야 스페인군이 비야프랑카를 탈환할 수 있었다. 1965년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시 전체가 스페인의 역사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일부로 12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세워진 수많은 성당이 자치단체 곳곳에 존재한다. 많은 순례자들이 오늘날에도 비야프랑카를 방문하여 면벌부를 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야프랑카델비에르소 [Villafranca del Bierzo] (유럽지명사전 : 스페인)

 

 

▲ 공공 알베르게를 지나고 우측 언덕에 산 프란시스코 성당

 

 

▲ 산티아고 교회. 교회에는 단일 직사각형 본당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창문이 있는 반원형 후진(apse), 용서의문, 바로크 양식의 예배당 및 18세기에 추가된 측면 성구실이 있다

 

 

▲ 용서의 문. 질병으로 인해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없는 순례자들이 이 문을 통과하면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과 같은 효력을 부여했다고 한다 

 

 

▲ 비야프랑카 후작의 성. 16세기 요새화된 궁전은 비야프랑카 후작의 거주지로 지어졌으며 독립전쟁때 소실되었다가 1850년대에 복원되었다. 현재는 개인소유라 한다

 

 

▲ 바에서 커피와 스파게티로 간식을 먹고 

 

 

▲ 13세기 지어진 언덕위에 있는 산 프란시스코 성당을 둘러본다

 

 

▲ 산 프란시스코 성당이 있는 언덕에서 비야프랑카 후작의 성을 당겨 보고

 

 

▲ 높은 산으로 둘러쌓인 비야프랑카 시내 모습 

 

 

▲ 마요르 광장을 지나고

 

 

▲ 산 니콜라스 엘 레알 교회. 17세기 중반에 건축되었으며 외관과 회랑은 갈리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내부에는 비야프랑카의 수호성인인 희망의 거룩한 그리스도 상이 있다

 

 

▲ 앨러미터 공원을 지나

 

 

▲ 산타 마리아 성당. 12세기 베네딕토회 수도원이었던 자리에 16세기에 현재의 교회가 건축되었으며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 요소를 가미한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내부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성모 승천을 기리는 제단이 있다

 

 

▲ 부르비아 강을 가로지르는 비야프랑카 중세 다리를 건너고

 

 

▲ 다리를 건너와서 비야프랑카 도심을 뒤돌아 보고, 산타마리아 성당 -  산 니콜라스 엘 레알 교회 - 산 프란시스코 성당 - 비야프랑카 후작의 성 등이 모두 보인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전체가 스페인의 역사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유적지와 유물로 가득한 도시이다

 

 

▲ 다리를 건너고 비야프랑카 외곽에 프리시마 수도원이 있다 

 

 

▲ 중세다리를 건너자 마자 바로 갈림길이 있다. 직진은 계속 도로를 따라 가는 길이고, 우측 길은 가파르게  오르면서 산중턱 9부 능선을 걷는 길이다. 우리는 늘 그러했듯이 도로를 따르는 길보다 시골길을 택하였으므로 우측 산길을 택해서 오른다. 헌데, 산길이 생각보다 훨씬 가파르고 고도를 한참이나 높혀야 한다. 기대했던 숲속 그늘도 별로 없어 뜨거운 햇볕에 직격을 당하며 가파른 산등성이를 힘들게 통과한다. 그래도 힘들게 오른 보람이 있어 산꼭대기에서 갈리시아 산맥의 웅장한 풍경을 두루두루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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