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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0구간

 (화방재-함백산-매봉산-삼수령-건의령)

 

 

▶ 종주 일정  :  2010. 10. 16(토)

 ▷ 태백 찜질방 - 택시 - 화방재 - 만항재 - 함백산 - 두문동재 - 금대봉 - 매봉산 - 피재 - 건의령 - 택시 - 태백 민박

▶ 종주 거리  :  28.0km

  ▷ 화방재 -1.4- 수리봉 -2.1- 만항재 -2.85- 함백산 -1.1- 중함백 -3.1- 은대봉 -1.0- 두문동재 -1.2- 금대봉 -2.7- 수아밭령 -0.9- 비단봉 -2.7- 천의봉(매봉산) -2.55- 삼수령(피재) -6.4- 건의령

▶ 소요 시간 :  11시간

▶ 산행 날씨 :  맑음

▶ 산행 회차 :  15회차

대간종주 주의구간

  ▷ 화방재-건의령

     ○ 강원도 대간길답게 1천3백 ∼ 5백 고지 이상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진행하므로 백두대간을 탄다는 기분이 한껏 고조되는 구간이지만, 화방재에서 피재구간인 함백산이나 매봉산 등을 오르다 보면 임도에 각종 시설물에 채소밭에 풍력발전기에 스키장에 체육시설에 물탱크에 공사자재에 철조망 등등 이것이 대간길인가 실망하게 된다. 난개발의 전형적 표본인 대간길 구간이다.

     ○ 하지만, 두문동재에서부터 비단봉까지는 자연보호림으로 지정되어 보존이 아주 잘되어 있는 구간도 있으며, 구간 전체 곳곳이 사방으로 조망이 트이는 전망대로서 하루종일 주변 경치를 두루 살필 수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산행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 대간길 리본이 아주 잘 붙어 있어 혼란스러운 갈림길은 없으나, 매봉산 채소밭 단지에는 대간리본을 붙일 수 없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첫 번째 바람개비를 지나고 두 번째 우측 콘크리트 길로 들어 서야 한다. 파란색 지붕의 조립식 건물앞을 지나 직진을 하면 매봉산 정상으로 가는 숲길이 나타난다.

 

▲ 동서울터미널

 23:00 심야우등버스를 타고 태백시로 향한다. 모처럼 마포 오형과 동행 산행을 하게 되어 대간종주 이야기를 하다보니 금새 태백시에 도착한다. 산꾼을 만나면 산이야기만 해도 밤을 샌다더니, 서로 관심사가 같으니 이 얘기 저 얘기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찜질방에 들러 잠시 눈을 붙였다가 화방재로 이동할 예정이다. 

 

 

예정보다는 조금 늦게 택시를 이용 화방재 어평휴게소에 도착한다

 

 

산행준비를 하면서 화방재 주변을 살펴본후, 파란지붕집 옆길로 해서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화방재는 태백 혈리(穴里)에서 천평(川坪)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흔히 어평재(於坪嶺)라 부른다 한다. 이 고개는 해발 936m로  고갯마루 부근에 진달래, 철쭉이 무성하여 화방령(花房嶺)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수리봉을 오르다 보니 뒷쪽으로 장산(1409m) 능선이 조망된다.

 

 

나무숲 사이로 아침해가 붉은 빛을 뿌리며 나타나고

 

 

들머리 화방재에서 30여분을 가파르게 오르자

 

 

수리봉 정상에 도착한다. 태백시 찜질방에서 잠을 설치고 산행을 시작해서 인지 몸이 무겁기만 한데, 좀 더 산행을 하고 땀을 내면 괜찮아 지겠지 하며, 정상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출발한다.  

 

 

낙엽이 진 나무가지 사이로 붉은 단풍이 현란한데

 

 

 

구릉같은 1214봉, 1238봉을 넘어

 

 

잠시 평지같은 안부로 내려 섰다가

 

 

다시 국가시설물이 있는 봉우리를 향해서 오른다

 

 

고도가 높아지니 운무가 짙어지고 군부대 조망을 따라 빙돌아 진행한다. 막바지 가을인지라 초겨울같은 세찬바람이 철조망에 메달아 놓은 대간리본을 모질게도 때린다. 올 겨울이 지나면 이 철조망 리본은 대부분 떨어져 나가고 몇개 남지 않을  것 이다.

 

 

공사중인 국가시설물을 뒤로 하고

 

 

널다란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만항재 입구에 당도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로 넘을 수 있는 고개중 가장 높은 고개 만항재. 해발 고도가 지나온 수리봉(1214m) 보다 120m 정도 더 높은 고개이다. 능목재(늦은목이재)라고도 하며, 지명 유래는 고려말 조선초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에 위치한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에 살던 주민 일부가 정선으로 옮겨와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이 곳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망향재(望鄕嶺)라 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만항재(晩項嶺)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만항재 쉼터를 잠시 올려다 보고

 

 

414번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공원화 사업으로 깔끔하게 정비된 소공원 입구에서 만항재를 되돌아 보고

 

  

함백산 등산로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414번 도로를 버리고 등산로로 들어 선다

 

 

대간리본 휘날리는 입구를 지나

 

 

송전철탑을 지나고

 

 

두문동재 나무팻말 이정표를 통과한다. 나무팻말 이정표는 지금까지 보아온 이정표와 다르게 독특한 모습으로 말뚝 이정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하다. 이 이정표는 두문동재까지 여러개를 만나게 된다. 아쉬운 점은 남은 거리를 표시하는 숫자가 있긴 한데 검은칠을 하지 않았으니 알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곳에서 두문동재까지는 대략 7㎞ 정도 남았으리라.

 

자그마한 봉우리를 오르다 말고, 만항재를 되돌아 본다. 짙은 아침 안개로 둘러 쌓여 있는 만항재 풍경은 이 곳이 1300여 미터 고지대 능선이 아닌, 평평한 구릉들이 모여 있는 평온한 마을 뒷동산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오르고 있는 자그마한 봉우리는 지도상 창옥봉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다른 지도에는 수리봉과 국가시설물 사이에 있는 1238봉을 창옥봉이라 표기한 것도 있다.    

 

 

여하튼 창옥봉에 올라서자 함백산이 한발 더 다가서 있고

 

 

봉우리를 넘어서자 평지같은 대간길이 나타나 잠시 여유를 부리며 진행한다

 

 

송전탑을 보면서 걷다보면 태백선수촌 가는 도로 옆으로 나란히 진행하게 되고 

 

 

완만한 봉우리 위에 천제단처럼 만들어진 기원단을 만나게 된다

 

 

이어서, 태백선수촌과 함백산 정상으로 도로가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허나, 평지같은 대간길도 잠시 거칠은 돌길이 나타나며 급경사로 함백산을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빡센 급경사를 오르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을 찾아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잠시 휴식후 지나온 대간길을 조망해 보지만 아직도 운무가 물러가지 않는다  

 

 

함백산 정상부에 다다르자 길은 다시 평평해지고, 세찬 바람이 모든 것을 날려 버릴 정도로 거세게 불어 제낀다

 

 

태백선수촌이 내려다 보이고

 

 

정상에 있는 통신시설도 바로 올려다 보인다

 

 

돌무더기 정상석을 향해서

 

 

초소(?) 같은 돌집 옆을 지나

 

 

드디어 오늘의 최고봉 함백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 통신소도 잡아 보고

 

 

기념사진도 한방 찍는다. 헌데, 함백산 정상은 사람이 서있기 힘들 정도로 무지막지한 바람이 불어 대고, 초겨울 바람이 춥기까지 하여 서둘러 주변 조망을 끝내고 바위투성이 정상을 내려  온다.

 

 

정상에서 중함백쪽 능선은 운무에 가려있고

 

 

정상에서 임도로 내려서자 그제서야 조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중함백 능선을 내려다 보면서

 

 

헬기장 우측 철조망 길로 접어 든다

 

 

중함백 좌측으로 고한읍이 보이고

 

 

중함백 우측 저멀리 매봉산 풍력발전단지가 조망된다

 

 

▲ 중함백 전위봉은 좌측 옆구리로 길이 나있어 거칠은 돌길이지만 힘들지 않게 통과한다.

 

 

▲ 함백산 정상쪽을 되돌아 보면서 전위봉 옆구리를 통과하자

 

 

▲ 안부가 나타나며 중함백 봉우리가 정면으로 올려다 보인다

 

 

▲ 안부에는 건장한 주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껏 보아온 주목중 제일 건강하고 푸르른 것 같다

 

 

▲ 중함백을 오르다 지나온 함백산 정상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

 

 

▲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중함백 정상부에 다다르자 키작은 고사목들이 즐비하고

 

 

▲ 좌측으로 두위지맥

 

 

▲ 뒷쪽으로 함백산

 

 

▲ 중함백. 앞쪽으로 은대봉, 금대봉 능선이 펼쳐진다. 1300m가 넘는 고지대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곳이야 말로 진정한 백두대간 능선이라는 느낌이 든다 

 

 

 중함백 정상은 정상석이나 이정표가 없다 보니 그냥 지나친다. 정상에서 좀 더 진행하자 전망대 이정표가 나오고 조망이 터진다. 

 

 

전망대에서 고한, 사북쪽을 살펴보고 저멀리 보이는 은대봉으로 향한다

 

 

▲ 은대봉 가는 길은 중함백에서 잠시 급경사로 내려 오고 이후 완만한 길로 이어진다

 

 

▲ 중함백에서 20여분 숲길을 걷자 적조암 사거리가 나타나고

 

 

▲ 제2쉼터라는 표지판과 함께 고한쪽 적조암, 태백쪽 샘물쉼터가 있음을 알려 준다 

 

 

▲ 계속해서 완만한 능선길로 편안하게 20여분을 더 진행하자 은대봉이 올려다 보이고

 

 

▲ 경사가 있는 오름길로 잠시 진행하자

 

 

▲ 제1쉼터 전망대에 도착한다

 

 

▲ 제1쉼터 바위 전망대로 올라가 지나온 대간능선을 되돌아 본다. 완만하게 중함백으로 이어지는 대간능선은 부드럽기만 하고, 솟구친 중함백산 뒤로 함백산 정상이 아득하기만 하다

 

 

▲ 중함백 우측으로는 두위지맥이 육중하게 뻗어 나가고

 

 

앞쪽으로는 은대봉 봉우리가 올려다 보인다. 잠시 쉬면서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은대봉을 향해서 경사가 있는 오름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 은대봉 정상을 향하여 가쁜 숨을 몰아 쉬자

 

 

▲ 은대봉 정상부에 다다른다.  길은 다시 완만해 지고

 

 

▲ 좀 더 진행하자 널다란 헬기장이 있는 은대봉 정상에 도착한다. 은대봉 아래 땅속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철도굴인 정암터널이 지난다고 한다. 은대봉 정상은 아삼삼하게 큰 나무들이 주변 조망을 가려버려, 잠시 정상을 둘러 보고 두문동재로 향한다.

 

 

은대봉 정상 조망을 조금은 실망하면서 평탄한 능선을 잠시 진행하자

 

 

▲ 이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우측 매봉산 능선부터 비단봉, 금대봉 능선까지 이어서 사진을 담는다.

 

 

▲ 몇 발짝 더 나아가자 거리낌 없이 금대봉-비단봉-매봉산 조망이 터진다

 

 

▲ 유전자보호구역 안내판이 설치된 안부로 내려와 잠시 숨을 돌린후

 

 

▲ 낮으막한 구릉을 하나 넘자 두문동재 산림감시초소가 눈에 들어 온다

 

 

▲ 두문동재는 넓은 주차장은 없지만 산림감시초소, 화장실, 휴게소, 간이매점 등 갖출건 다 갖춘 고개마루이다. 이젠 터널이 뚫려 오가는 차량이 없는 한적한 도로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번성했던 태백-정선 만큼이나 활기가 넘쳤던 고개였을 것이다. 

 

 

백두대간두문동재 표지석만이 우뚝하니 고개를 지키고 있는 지금, 두문동재 유래를 찾아보니 한많은 민초들의 삶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두문동재 유래>

두문동재는 태백시 화전동 호명골에서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두문동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두문동마을에 있던 고려 유신(遺臣)들이 넘던 고개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두문동재에서 금대봉까지 이어지는 1.2㎞의 능선을 '싸리재' 또는 '불바래기 능선'이라 부르는데 예전 화전민들이 산 아래에서 놓은 불을 이 능선에서 맞불을 놓아 진화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두문동 유래 : 농민신문 >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인재를 등용하고자 과거를 치르자 고려 충신들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외치며 응시하지 않는다. 여러 차례 권유에도 응하지 않자 이성계는 아들 방원을 통해 정몽주를 제거한다. 이에 고려 충신들은 황해도 광덕산 서쪽 기슭에 모여 조선왕조에 입궐을 하느니 수양산의 백이숙제(伯夷叔齊)처럼 고사리나 꺾으며 살자고 결의하고, 관(巾)과 관복(衣)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골짜기 깊이 숨어 두문불출(杜門不出)해 버린다. 그러고는 백성들을 돌보게 하기 위해 총명하고 나이 어린 충신 한명을 조선의 조정에 내보냈는데, 그가 바로 청백리의 표상인 정승 황희다.
이성계가 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불을 지르자 모두 불에 타 죽었다. 훗날 관과 관의를 벗어 걸어놓은 고개를 ‘불조현(不朝峴)’, 골짜기를 ‘두문동(杜門洞)’, 정몽주 등을 포함한 충신들을 ‘두문동72현(杜門洞七十二賢)’이라 불렀다.
그런데 강원도 정선 금대봉 아래에 있는 고한읍 두문동과 남면 거칠현동에도 고려 유신 7명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거칠현유적공원은 조선 건국에 반대해 거칠현동에 은거하여 살던 전오륜(全五倫)·변귀수(邊貴遂)·김충한(金沖漢)·고천우(高天佑)·김위(金瑋)·이수생(李遂生)·신안(申晏) 7인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1997년부터 정선아리랑을 보존·발전하고 칠현(七賢)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성사업을 벌여 고려유신칠현비(高麗遺臣七賢碑)를 세웠다. 정선군에 따르면 고려 충신들은 한 맺힌 마음을 한시로 지어 불렀는데, 이곳 선비들이 듣고 사람들에게 풀어 알려주면서 구전된 노래가 정선아리랑이 됐다고 한다.
인접한 삼척시 건의령(巾衣嶺)에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과 신하들에 관한 얘기가 전해온다. 조선 초 삼척으로 유배온 공양왕이 근덕면 궁촌에서 살해되자 충신들이 건의령을 넘어올 때 관과 관복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다시는 조정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하며 함백산 골짜기로 은거했다는 것이다. 이 전설에 따라 정선군 두문동에 은거한 고려 유신들은 공양왕을 모시던 신하들로 추정된다.

 

<정선아리랑 유래 : 정선군청 홈페이지>

우리나라 영서·영동지방에 분포(分布)되어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이 고장 민요 정선아리랑은 일명 아라리라 부르고 있다. 정선아리랑이 이 고장에 널리 불리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 전인 조선 초기라 전한다. 당시 고려 왕조를 섬기던 선비들 가운데 불사이군 (不事二君)으로 충성을 다짐하며 송도(松都)에서 은신 하던 72현 가운데 7현은 정선 (지금의 남면 거칠현동 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기어 일생 동안 산 나물을 뜯어 먹고 생활하면서 지난날에 모시던 임금을 사모하고 충절(忠節)을 맹세하였다. 그들이 입지 시절의 회상과 가족,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곁들여 고난을 겪어야 하는 심정(心 情)을 한시로 읊은 것 중 정선 아리랑 가사로 인용된 것이 많다.
7현들이 이러한 비통(悲痛)한 심정을 한시(漢詩)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부르던 것을 지방의 선비들이 듣고 한시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풀이하여 알려 주면서 지방에 구전되던 토착요에 감정을 살려 부른 것이 오늘에 전하여지고 있는 아리랑 가락이며. 그 후 사화(士禍)로 낙향한 선비들과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애창하였고 전란과 폭정시(暴政時)에 고달픈 민성(民聲)을 푸념하며 내려오다가 『아리랑. 아리랑』하는 음율(후렴구)을 붙여 부르 게 된 것은 조선조 후기 (또는 경복궁 중수시)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나라없는 민족(民族)의 서러움과 울분을 애절한 가락에 실어 스스로를 달래 왔었다. 일제를 거치는 동안 사상(思想)이 담긴 노래는 탄압(彈壓)됨에 따라 애정과 남·여 관계의 정한(情恨)을 소재로 한 새로운 노래가 많이 불리어 졌으며. 예로부터 전하여 지는 노래와 함께 오늘날 우리 나라의 독특한 가락을 지닌 민요(民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  정선국유림관리소 산림유전자보호림 감시초소에서 인적사항을 신고하고

 

 

낙엽이 쌓인 임도길로 들어 선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임도길을 따르다 보면

 

 

우측으로 금대봉 오르는 갈림길이 나오고

 

 

▲ 여러개 다채로운 안내판과 이정표를 만난다

 

 

▲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돌을 놓아 만든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길게 가져 갔는지 두문동재에서 50여분 걸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금대봉 정상 도착

 

 

주변을 둘러 보지만 아삼삼한 주변 나무들때문에 탁 트이는 조망은 얻을 수 없다

 

 

빛바랜 전망 사진이 있지만 수풀너머로 강원랜드가 있는 고한,사북쪽 전경은 흐릿하기만 하다

 

 

비단봉 가는 길은 생태보전지역으로 자연휴식년제도 실시하고 입산통제도 하여서 인지, 있는 그대로 숲으로 보존이 아주 잘되어 있다. 이 곳도 사거리 이정표를 애초에 설치하였으나 자연휴식년제 차원에서 두문동재와 삼수령 표시외는 모두 떼어 낸 것으로 보인다. 

 

 

금대봉에서 수아밭령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이므로 힘들지 않고 여유롭게 진행할 수 있다. 더하여 원시림에 가깝도록 잘 보존된  대간길 중간 중간 이정표도 있고 쉼터도 있으니, 비록 전망은 트이지 않지만 기분 좋게 걷는다. 이 곳 역시 지도상 검룡소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인 것 같은데 이정표 표시지를 떼어 버렸나 보다

 

 

1256봉과 1233봉을 지나

 

 

고목이 자리하고 있는 수아밭령에 도착한다. 수아밭령은 쑤아밭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예전에 화전을 일구면서 밭벼를 심었다는 수화밭(水禾田)에서 유래가 되었다 한다.

 

 

수아밭령을 지나자 비단봉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되고

 

 

아직 남아 있는 단풍들을 돌아 보며 꽤 경사가 있는 비단봉을 오른다

 

 

비단봉 정상 근처에 바위전망대가 나타나고, 지나온 대간능선이 한눈에 들어 온다. 금대봉-은대봉-중함백-함백산 능선이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선을 그으며 저만큼 멀어져 간다. 하루 종일 걸은 능선을 이렇게 한눈에 되짚어 볼 수 있는 전망대도 흔치 않은데, 북진하던 대간길이 금대봉을 기점으로 동진하게 되니 이런 전망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비단봉 정상인 바위 절벽을 우회하여 오르니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고

 

 

정상석 바위전망대에서 지나온 대간길을 대간길을 다시 한번 잡아 본다. 저멀리 함백산 뒤로 태백산 마루금도 희미하게 조망된다. 

 

 

비단봉에서 잠시 숲길을 내려 오자

 

 

시야가 트이면서 매봉산 채소밭과 바람개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대간길은 첫번째 바람개비 채소밭을 가로 질러 오르면 될 것 같은데 

 

 

잠시 길이 헷갈려 첫번째 바람개비 첫번째 임도길로 우회전 진입하여 대간길 찾는데 실패하고

 

 

다시 되돌아 나와 두번째 임도길, 파란지붕 조립식 건물이 있는 길로 들어선다. 대간길의 영원한 이정표 대간리본이 없으니 당연히 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파란지붕 조립식 건물앞을 지나 능선을 향해 오른다

 

 

채소밭이 끝나자 키작은 나무숲을 통과하게 되고

 

 

능선으로 올라 서자 두번째 바람개비 밑에 백두대간 매봉산 표지석이 나타난다 

 

 

▲ 매봉산 표지석이 이 곳에 있지만 이 곳은 정상이 아니라고 한다. 바람개비 저편 볼록 솟은 봉우리가 매봉산 정상 천의봉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표지석에 높이를 표시해 놓지 않았다

 

 

매봉산 능선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들을 살펴보니, 발전기 1기당 1000여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그냥 천천히 도는 것 같은 바람개비가 살랑살랑 힘없이 도는게 아닌가 보다.  발전량에 내심 놀라며 천의봉으로 향한다.

 

 

가을걷이가 끝나 가는 채소밭은 내년을 위한 밭갈이 준비가 한창이고

 

 

▲ 바람의 언덕을 지나

 

 

천의봉 가는 숲길로 들어 선다   

 

 

이정표를 따라 숲길로 잠시 진행하면

 

 

매봉산 천의봉에 도착한다

 

해발 1,303m 높은 산으로 일명 매봉산이라고 부르는 천의봉은, 낙동강과 남한강의 근원이 되는 산이다.   하늘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천의봉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분기점을 이루는 산으로 그 의미가 깊은 산이다.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산맥이 금강, 설악, 오대, 두타산을 만들고 그 맥이 남쪽으로 달리다가 천의봉에 이르러 두 가닥으로 갈라지니  
서쪽 가닥은 금대봉,  함백산, 태백산으로 이어져 장차 소맥산맥이 되어 멀리 지리산까지 뻗어가  해남반도의  땅끝(土末)까지 이어지고 그 줄기는 다시 남해안을 따라 김해의 구지봉까지 이어지며 동쪽가닥은 백병산,  면산,  일월산으로 이어져 멀리 부산의 용두산까지 뻗어가는 태백산맥의 등마루가 되니 이 산이야말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는 산이다.

영남에서 산을 거슬러 올라와 황지로 접어들면 가장 북쪽에 가장 높이 솟은 산이 바라보이니 그 산이 천의봉(매봉산)이다.  천의봉은 하늘봉이요 하늘로 통하는 산봉우리요 하늘을 닮은 봉우리이다.  삼척군 하장면쪽에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오면 가장 윗쪽 하늘 가까운 곳에 천의봉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방향을 따져 북쪽을 위쪽으로 잡기보다 산과 물줄기를 따져 아래와 위쪽을 정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방향으로는 북쪽에 
있는 하장면이 물줄기 아래에 있기에 즉 천의봉 아래에 있기에 하장면이요,  상장면(현 태백시 황지, 상장동)은 물줄기 위쪽 천의봉 쪽에 있으니 상장면인 것이다.  천의봉 남쪽은 경사가 급하나 북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25년전 한미재단에서 20만평의 산지를 개간하여 
전국 제일의 고랭지 채소 단지가 되었다.   산의 동쪽은 피재가 있고 그리로 35번 국도가 나있다.

천의봉을 일명 매봉이라 부르는 이유는 황지동 대명광업소가 있던 아래쪽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고 위쪽에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다.   연일 정씨 묘로 금계포란 형국의 명당이라 하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면 천의봉이 매(鷹)처럼 바라보이기에 매봉이라 부른것이다.  금계포란은 닭이 알을 품는 형상의 명당인데 이럴 때 매나 수리가 이곳 명당을 노려보고 있어야 된다는 풍수이치 때문에 인위적으로 천의봉이 매봉이라 불리어지게 된 것이다.   매봉하면 될것을 매봉산이라 불리어져 역전 앞과 같은 뜻이 되고 말았다.

진주지에는 鷹幕峰 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전하는 말로,  옛날 이곳에서 매사냥을 하였다고도 한다.

<출처 : 태백시청 홈페이지>

 

정상 주변을 간단히 조망후

 

 

정상을 되돌아 나와 삼수령(피재)로 향한다

 

 

매봉산에서 삼수령 가는 길은 한동안 채소밭이 계속되기에 채소밭 가장자리로 진행하게 된다

 

 

대간길은 콘크리트 임도길과 합류하기도 하고

 

 

물탱크 공사장 옆을 지나기도 한다

 

 

고랭지 채소밭이 끝날 즈음 천의봉과 광활하게 펼쳐진 채소밭 단지를 되돌아 본다 

 

 

천의봉에서 20여분 내려 오자 낙동정맥 분기점 이정표를 만난다. 지금 대간을 종주중인데 대간종주가 끝나면 이 낙동정맥도 종주할 수 있을까, 아직은 생각해 보지 않은 먼 훗일이라 생각이 든다  

 

 

낙동정맥 분기점에서 삼수령 이정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여 삼수령에 도착하고

 

 

삼수령은 태백시내에서 35번국도를 따라 삼척으로 가다보면 해발 920m의 재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은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이 된다. 이곳의 빗방울이 한강을 따라 황해로,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도록 하는 분수령이라 하여 삼수령(三水嶺)으로 불리운다 . 정상에는 조형물과 정자각이 위치해 있고 삼수령 맞은편에는 매봉산풍력발전단지(바람의 언덕),  그리고 낙동정맥의 시작점이 위치해 있다. 삼수령을 피재라고도 하는데 삼척 지방 사람들이 황지지역을  "이상향" 이라 하여 난리를 피해 이곳으로 넘어 왔기에 피해 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출처: 태백시청>

 

 

지금 시각이 오후 3시가 조금 지났다. 해가 지려면 2-3시간 여유가 있다. 건의령까지 6.4㎞이므로 이 정도면 해지기 전에 충분히 건의령까지 갈 수 있다. 건의령까지 진행하자는 옥수동 최형의 제안에 마포 오형과 나 역시 찬성, 오늘 산행은 건의령까지 가는 것으로 즉석에서 결정한다.

 

 

건의령 가는 길은 잠시 콘크리트 임도를 만나 진행하다    

 

 

숲속 능선길로 다시 복귀한다

 

 

건의령 가는 길은 숲속 길로 계속 이어지고, 얕으막한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진행하게 된다

 

 

주변 조망이 트이지 않고 볼거리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산행속도가 빨라 진다

 

 

그래도, 중간중간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 남은 거리와 소요시간을 계산해 가며 지루하지 않게 걷는다

 

 

야산같은 느낌이 드는 대간길 옆으로 35번 도로가 나란히 가고

 

 

한국전력에서 세워 놓은 검은색 이정표도 만난다. 근처에 송전선로가 지나는 모양이다

 

 

이젠 건의령까지 1시간 정도만 가면 된다. 산행 말미가 다가오니 열심히 시간계산을 하게 된다

 

 

참나무 숲길을 걷다가

 

 

소나무 숲길을 걷다가 하며 낮은 봉우리들을 오르 내린다

 

 

휴식없이 걷다보니 건의령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건의령 도착 직전 멋진 지형이 나타난다. 한반도 모양 같은 특이한 지형인데, 이 높은 곳에서 바라 봐야 한반도 모양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 지형은 대간길에서 보아야 하므로 마치 대간꾼을 위한 선물인 것 같기도 하다.  태백시 상사미동 골지천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다  

 

 

내일 올라야 할 푯대봉 능선을 올려다 보고

 

 

널찍하게 정비된 건의령으로 내려선다. 건의령 터널이 뚫린후 이 고개마루는 휴식 공간으로 복원 정비를 하게 된 것 같다. 오늘 산행은 이 곳 건의령에서 종료하고, 내일은 건의령-댓재 구간을 종주할 예정이다. 

산행 시간을 계산해 보니 총 28㎞ 거리에 1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하루종일 걸은 셈이지만 1300m 고봉들을 오르내리며 진정한 백두대간을 만끽하느라 크게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더우기,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초겨울 날씨는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로 한여름 무더위 산행때 보다 훨씬 수월하게 산행을 마치게 되었다.  

 

 

건의령에서 태백시로 되돌아 가기 위해 상사미동 마을로 내려가려 했으나 길이 마땅치 않다. 해서 우측 임도로 내려서서 1톤 트럭을 얻어 타고 상사미동 마을 35번 국도에 도착, 택시를 부른다. 옥수동 최형, 마포 오형과 함께 태백시로 이동, 여관을 잡고 샤워를 하고 식당에서 밥 먹고 반주도 하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와 곧 바로 취침, 내일 산행에 대비한다.   

옥수동 최형과 마포 오형은 산행속도가 고수급이다. 해서, 하루종일 동행산행을 하긴 했지만 같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외는 동행산행이 아닌 나홀로 산행이 되어 버렸다. 또한 각자 나름대로 사진 담기에 여념이 없으니 같이 찍은 단체 사진도 없다. 산행을 끝내고 종주기를 쓰다 보니 이 부분이 제일 아쉽기만 하다. 대간종주가 끝날려면 아직도 멀었기에, 또다시 얼마든지 동행산행을 할 수 있기에, 산행시 전혀 느끼지 못했던 만남의 인연과 소중함을 각자가 너무 소홀히 했던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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