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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10구간

(개머리재-윤지미산-화령재)

 

 

▶ 종주 구간 10 구간 (개머리재 - 화령재)

▶ 종주 일정  :  ‘10.  7.  4 (일)

▶ 구간 고도 및 거리  :  17.8㎞

    ▷ 개머리재(소정재.290m)-도(440)-지기재(260m)-금은봉갈림길(380)-쑥밭골재(300m)-신의터재(260m)-장자봉갈림길(380)-무지개산갈림길(420m)-437.7봉-윤지미산(538m)-화령재(310m)

    ▷  개머리재 -2.7- 지기재 -4.55- 신의터재 -4.27- 무지개산 갈림길 -4.41- 윤지미산 -1.87-화령재  :  17.8㎞

    ▷  총소요 시간  :  7시간 20분

▶ 산행날씨  : 흐림.  가끔 비

▶ 산행회차  : 7회차

▶ 산행 주의 구간

    ▷ 개머리재 - 지기재

       - 개머리재를 지나서 10여분 정도 지나면 임도가 나오는데 무조건 직진하여 숲속을 빠져나오면 대간길을 벗어 나게됨.  임도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오르막길을  택하여야 함.  대간 리본이 많이 붙어 있으나 비오는 날 등 어두워지면 주의를 요함. 

    

▲ 전날인 7/3 토요일 동서울-직행시외버스-상주-시내버스-모동면 소재지로 이동하여 지난주 예약해 놓았던 부산장 민박에서 1박을 하였다. 아침 일찍 택배를 부탁하여 지난번 산행 종료지점인 개머리재로 향한다.

 

 

▲ 개머리재 포도밭 우측으로 지기재 가는 길이 이어진다. 대간길은 풀숲이고 비가 내린후 빗방울을 머금은  풀숲은 금새 등산화를 흠뻑 적시게 한다. 

 

 

▲ 개머리재를 출발하여 10여분 정도 지나 임도를 만났는데 무심코 임도를 따르다 보니 윗 사진처럼 엉뚱한 농로로 나와 버렸다. 주변 고도가 비슷하다 보니 헷갈리기 쉬운 구간이다. 대간길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맨다.

(길주의) 개머리재를 지나서 10여분 정도 지나면 임도가 나오는데 무조건 직진하여 숲속을 빠져나오면 대간길을 벗어 나게됨.  임도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오르막길을 택하여야 함.  대간 리본이 많이 붙어 있으나 비오는 날 등 어두워지면 주의를 요함.

 

 

길을 잘못 들어 이리저리 헤매면서 찍은 주변 사진이다.  다시 산이 있는 쪽으로 되돌아 가면서 운무에 휩싸인 무명봉쪽으로 향한다.  

 

 

숲속에 묻힌 임도로 되돌아 오며 길을 살펴보니 대간리본이 붙어 있는 곳이 보인다. 이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야 하는 것을 흐린 날씨에 어두운 숲속길이라 대간리본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쓸데없이 산행초반부터 시간낭비를 한 셈이다. 

 

 

대간길로 복귀하여 얕으막한 야산을 하나 넘으니 시야가 트이는 곳이 나타난다. 비가 내린 이후라 지기재 주변 운무가 채 가시지 않았다. 이 곳은 서고동저형 지형이라 서쪽은 평평하여 농경지와 임도가 인접해 있고, 그러다 보니 대간길을 구분하기에 애매한 곳이 여러군데 있다.   

 

 

▲ 지기재오는 도중 길을 잃고 헤매다 보니 지기재 도착하자 아침 7시가 넘어간다. 오늘 화령재까지 진행후 서울로 다시 귀경할 예정이므로 되도록이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잘못된 길을 가면 안된다. 지도를 꺼내어 대간길을 다시금 숙지한다.  지기재 역시 개머리재처럼 주변이 온통 포도밭이다. 일교차가 아무래도 큰 지역일테니 포도맛 또한 좋을 것이다. 포도향기 그윽한 팔월의 지기재를 생각하며 서둘러 출발한다.

 

 

비가 오려는 날씨 탓인지 숲속길로 들어 서면 어둠이 몰려 온다. 대간길은 작은 소나무와 잡목들로 이루어져 있어 시원시원하게 진행할 수 없다. 신의터재까지도 작은 야산을 넘어 좌측으로 마을, 우측으로 깊은 계곡을 두고 진행하게 된다. 

 

 

이 곳 이정표는 설치한 지 얼마 안되어 보인다. 글씨도 선명하고 무엇보다도 거리와 소요시간이 비교적 정확하다.

 

 

대간길에서 논둑길을 만난다. 아무리 고도가 낮다지만 대간길은 대간길이다. 우측은 깊은 계곡인데 좌측은 능선에 논둑길이라니, 아마도 다랭이 다랭이 계단식으로 이러한 논들이 만들어져 능선까지 올라 왔으리라. 지도를 확인해보니 골짜기 이름이 안쑥밭골이라 한다.   

 

 

신의터재가 가까와 지지만 숲속에 들어가니 어두운 대간길이 된다. 가느다란 빗방울이 대간길 숲속을 방울방울 적셔준다. 지난번 구간에서는 무더위와 싸웠는데 오늘은 그러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배낭커버만 씌우고 시원하게 비를 맞으며 진행한다.

 

 

▲ 신의터재

지기재에서 1시간30분 정도 걸려 신의터재에 도착한다. 신의터재는 다채로운 표지석과 이정표, 쉼터 등이 구비된 일종의 소공원 고개이다. 등나무 쉼터에는 텐트까지 쳐놓고 밤을 보낸 객들도 있다. 대형버스도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산악회 단체산행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 신의터재는 상주시 화동면과 내서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임난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리었고 임난 때 의사 김준신(金俊信)이 이 재에서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많은 왜병을 도륙하고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터재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옆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준신의 공을 기리는 유적비가 서있다.

 

 

▲ 윤지미산 가는 길

하늘이 잔뜩 흐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라서 인지 조망이 트이질 않아 대간길만 보고 걷는다. 이런 날씨는 무더위를 피할 수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주변 경관을 두루두루 구경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게 세상사 이치인가. 이 무더운 한여름에 대간종주를 하면서 모든 것을 얻으려 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

신의터재를 출발한지 1시간10분정도 지나서 만나는 이정표상 소요시간이 나의 진행속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일반 등산객들이 산행하는 평균 시간으로 이정표에 기재하였을 테니, 나의 진행 속도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는 방증이다.  그래, 무리하지 말고 편안하게 진행하자. 또, 지난 산행처럼 무릎에 이상이 오면 곤란하니까. 남은 구간거리가 화령재까지 8.8키로이니 서둘지 않아도 서울까지 귀경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  괜시리 무릎에 이상이 오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여기저기 핑게거리를 찾는다.     

 

 

고도가 조금만 높아지면 능선길은 운무에 휩싸인다.  안그래도 대간길이 숲속에 묻혀 있어 조망이 트이지 않는데, 비구름까지 몰려 오니 주변 경치를 감상할 기회는 더구나 없다. 그냥 대간리본을 쫒아 비에 젖은 흙길을 보고 걷는다. 오가는 산객들도 없다. 오로지 홀로 이 숲속을 걷는다. 더구나 신의터재에서 윤지미산까지 이정표상 9키로나 되는 먼거리를 뛰어난 볼거리도 없이 똑같이 생긴 숲속길을 마냥 걸어야 한다. 이러니 상념에 잠길 수 밖에, 이런저런 지나온 일들부터 부질없는 생각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상념길은 대간길보다 더 긴 것 같다.

 

 

무심한 상념에 잠겨 걷다 보니 무지개산 갈림길을 그냥 지나쳐 버렸나 보다. 이정표를 본 것도 같은데 아무 생각없이 진행한 것 같다.  대간길이 아니면 언제 이곳을 또 올것인가?  무지개산 정상을 들르지 못하고 윤지미산으로 향한다. 

 

 

낮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빗방울이 뿌리면 맞아 가며 그냥 대간길을 걷는다. 그러다 이정표를 만나면 반가워 사진 한방 찍고, 또 오르기를 반복한다. 헌데, 위치가 뒤바뀐 잘못 설치된 이정표때문에 윤지미산 정상이 아직도 멀은 줄 알고 진행한다.  오르내림은 있지만 한시간여 동안 정상을 향한 꾸준한 오름길이 계속된다.

 

 

▲ 정상 부근 가파른 오름길을 치고 오르니 돌탑처럼 생긴 정상석이 오는 길손을 맞이해 준다. 돌을 세워 윤지미산임을 알리는 표지석 또한 다른 봉우리와 다르다. 어느 누가 손수 돌탑을 쌓고 저 글씨를 썼을까?  수없이 오가는 대간꾼들에게는 어떠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을까?  손으로 쓴 글씨가 세련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고 소박한 맛이 있어 좋다.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 정상석이 마음에 든다.

 

<윤지미산 유래 : 펌>

이 산의 원래 이름은 소머리산이었다고 하나 언제 어떻게 윤지미산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몇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마륜 설이다. 마륜(馬輪) 즉 말구리에서 말이 구른다는 뜻이고, 지미는 백제어의 고개(峙)에서 나왔다고 한다. 윤지미산 아래에 마륜 마을이 있다.

다음 설은 윤집기중(允執其中)이라는 말이 변하여 윤지미가 되었다 한다. 이 말은 중용(中庸)에도 나오고 논어에도 나오는 말인데, 요(堯)임금이 순(舜)임금에게 했다는 말이라 한다. 천지역수재이궁(天之曆數在爾躬)하니, 윤집기중(允執其中)할지니. 논어 요왈(堯曰) 편. 하늘의 운수가 자네에게 있으니 진실로 그 "중(中)"을 잡도록 할지니 라는 뜻이라 한다.또 다른 설은 윤은 말구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같고, 지미를 질퍽질퍽한 뫼 즉 진 뫼가 변하였다고 하는 설이다.  말이 굴러 넘어질 정도로 산이 가파르고 질척거린데서 유래하였다 한다.

 

 

▲ 정상은 운무에 묻혀 버려 10미터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평평한 평지같은 정상에 또 다른 돌탑을 쌓으려 바닥을 고른것인지, 아니면 임시 거처용 움막을 짓기위해 돌을 깔은 것인지, 용도가 불분명한 직사각형으로 깔아놓은 바닥돌이 눈에 뛴다.  

신의터재에서 윤지미산까지 대략 9키로에 산행시간 3시간 20분이 걸렸다. 짧지 않은 거리에 조망이 트이지 않는 대간길, 어찌 보면 지루한 길일 수도 있으나 조용히 묵언 수행하듯 걸으니 나름 아쉬움이 남지는 않는다

 

 

▲ 윤지미산을 급경사로 하산한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한 밧줄을 붙잡고 미끄러지듯 급경사 구간을 내려온다. 

 

 

▲ 윤지미산에서 30여분 진행하자 시야가 트이면서 인삼밭이 나타난다. 인삼밭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 곳 토양이 인삼재배에 적합한 모양이다. 이 곳은 행정구역상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라 한다. 이젠 고도도 낮아지고 농경지도 나타나니 오늘의 날머리 화령재도 얼마 남지 않았다.

 

 

▲ 풀숲에 잠긴 대간길을 따르다 보면 지나온 인삼밭과 이어지는 임도를 만난다. 이 임도는 화동면과 화서면을 이어주는 임도로 농사용 도로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한동안 이 도로를 따른다. 

 

 

▲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터널위를 통과하면서 화서면소재지와 봉황산 모습을 잡아 본다. 

 

 

▲ 고속도로 터널에서 10여분 더 진행하면 날머리 화령재에 도착한다. 

 

 

▲ 화령재

 개머리재에서 18키로 7시간 20분을 걸어 드디어 화령재에 도착한다. 여유롭게 걷다보니 소요시간 역시 여유롭게 기록된다. 또 한구간을 마무리했다는 희열감이 뭉클뭉클 솟아 오른다. 이런 희열감이 산행중 고통을 잊게하고 다음 구간을 도전하게 만드는 활력소가 되나 보다. 흡족한 기분으로 화령재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며 팔각정, 표지석, 이정표 등을 확인해 본다. 비포장 주차장에 모래를 한트럭 부어 놓은 것으로 보아 이 넓은 주차장을 포장을 하거나 소공원화 시킬 모양이다. 팔각정 아래 경사면에는 간이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어 오고가는 이들이 쉬어 가기 편하게 배려해 놓았다.

화령재에서 잠깐 머물다 다음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기 위해 화서면 신봉리쪽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화령재 유래 : 펌>

백두대간 1,425km 중 상주 구간은 69.5km이며 화령은 고려 때 이곳 일대를 관할하던 화령현(化寧縣)의 지명이다. 택리지에는, “상주 서쪽은 화령(火嶺)이요 고개 서쪽은 충청도 보은인데 화령은 소재 노수(1515-1590)의 고향”이라 하여 소백산맥의 줄기를 타고 북으로 조령, 남으로 추풍령과 연하여 화령으로 불려 왔다고 전한다. 신라 때는 연비군(蓮匕郡), 경덕왕 때에는 화령군(化寧郡), 화령이란 지명은 고개 이름인 火嶺에서 연유된다. 고려 때에는 화령현으로 지금은 화서면이다. 북쪽은 봉황산을 거쳐 속리산 문장대로 남쪽은 국수봉으로 이어지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화령재는 火嶺으로 표기하는데 옛지명은 化寧이다. 火嶺이란 이름에 대해선 삼국시대부터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많이 일어난 국경지역이고 김유신 장군이나 후백제의 견훤이 중요시 여겼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6.25때에도 이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여 불火자를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는 화서면, 화동면, 화북면, 화남면을 합쳐서 화령현이라 했고 그의 소재지가 지금의 화서면 소재지였기에 지금도 화서면을 화령이라 부른다 한다. 그리고 그 부근의 모동면과 모서면을 합쳐 옛날엔 중모현이라 했다.

 

신봉2리 표지석이 있는 마을입구에서 산행후 뒷정리를 하고 삼거리 도로 건너편에 있는 다음 구간 들머리를 확인한다. 대간길은 가건물이 있는 옆길로 해서 숲속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다. 다음 들머리를 확인했으니 이젠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신봉2리 표지석 앞에서 상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 상주시외버스터미널

 상주시외버스터미널 근처 사우나탕에서 목욕을 하고 뽀송뽀송 새옷으로 갈아 입는다. 비와 땀에 엉망이던 차림새는 사우나탕을 나오는 순간 새사람이 되어 버리고, 근처 식당에서 시원한 냉면 한그릇 꼽베기로 받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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