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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15구간

(하늘재-포암산-대미산-황장산-문복대-저수령)

 

  

▶ 종주 일정  :  ‘10. 8. 28(토) - 8. 29(일) (1박2일)   

   ▷ 전날  :  서울 - 충주 - 미륵리 민박   

   ▷ 첫째날  :  미륵리 - 하늘재 - 포암산 - 대미산 - 작은차갓재 민박  

   ▷ 둘째날  :  작은차갓재 - 황장산 - 벌재 - 문복대 - 저수령 - 단양 - 서울

▶ 구간 거리 :33.49km

   ▷ 하늘재 -1.6- 포암산 -2.9- 만수봉갈림길(마골치) -4.9- 1032봉 -2.7- 부리기재 -1.35- 대미산 -5.9- 차갓재 -2.6- 황장산 -0.92- 황장재 -4.56- 벌재 -3.5- 문복대 -2.56- 저수령

       *  하늘재 - 차갓재 : 19.35km

       *  차갓재 - 저수령 : 14.14km

   ▷ 접속 구간 : 미륵리 -2.0- 하늘재, 작은차갓재 -1.1- 안생달마을

▶ 소요 시간

   ▷ 첫째날  :  10시간 40분   

   ▷ 둘째날  :   7시간 40분

▶ 산행 날씨  : 첫날 흐림, 둘째날 흐리고 한때 비

▶ 산행 회차  :  12회차

▶ 산행(주의) 구간

   ▷ 월악산 통제구간  :  20.8km

      - 만수봉갈림길(마골치) - 대미산 - 황장산 - 벌재

   ▷ 차갓재 - 황장산 - 치마바위

      - 작은 차갓재에서 경사가 심한 능선을 타고 오르면 묏등바위에 도착하며 황장산 특유의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인 수직벽의 날등을 통과해야 하나 로프가 잘 설치되어 있으므로 무게중심 균형을 맞추면서 천천히 진행하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 황장산 정상에서 감투봉까지의 길도 칼날 암릉지대로 서두르지 말고 조심해서 진행해야 한다

     - 치마바위까지는 암릉이 계속되므로 시간에 쫒기지 말고 천천히 진행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어두워 지기 때문에 대간리본을 잘 확인해야 하고 진흙 바위 길은 미끄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 산행 전날 동서울에서 미륵리까지

 

 

▲ 미륵리 하늘재펜션민박에서 하루밤을 묵고

 

  

 산행 당일 민박집을 출발

 

 

 중원미륵리사지 입간판을 지나

 

 

 미륵리사지 입구에 들어 선다.

 

 

▲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미륵리사지에 들어서자 이런저런 유물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 사찰터는 황토흙으로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 미륵대불 얼굴 부분은 방금 조각을 끝낸 것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이다. 오랜 세월동안 이끼조차 끼지 않고 애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 미륵대불, 석등, 오층석탑이 일직선 형태로 북쪽을 향하고 있다.

 

 

▲ 미륵대원터

미륵리사지 바로 옆에는 미륵대원터가 자리하고 있다.

 

미륵리사지는 고려시대 석굴사원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충주 지역을 대표하는 불교 유적이다. 석실 사원은 신라의 인공 석굴사원인 토함산 석굴암을 제외하면 석실 사원의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미륵리사지는 인공 석실 사원을 계승한 고려시대 유일의 석실사원으로 평가되며 사찰 연구에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미륵리사지를 정비, 복원하기 위하여 1977~1991년 사이에 5차례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사역(寺域) 내에 존재하는 유적과 유물, 그 간의 발굴 성과를 종합해볼 때 사찰은 고려 초 10C 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 후기

고종때 몽고 침입으로 소실된 듯하다. 발굴 조사 시에 ‘명창3년(明昌三年)’, ‘미륵당(彌勒堂)’, ‘대원사(大院寺)’ 등의 명문와(名文瓦)와 군마도, 맹호추장도가 그려진 평기와, 인물도가 새겨진 막새기와 등이 수습되기도 하였다. 5차 발굴 시에는 사역과 경계되는 곳에 역원지 건물터가 발굴됨으로써 이를 ‘ 미륵대원(彌勒大院)’이라고 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유물들을 입구에서부터 살펴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쓰러진 당간지주 조각이다. 특히 당간지주에는 섬세하고 예쁘게 양각된 연화무늬 있다. 당간지주에 연화문이 양각된 예는 경주 보문리사지에서만 그 예를 찾을 수 있는 귀중한 예이다. 반대쪽에는 시커멓게 세월의 때를 짊어진 채 기어가지도 못한 거북돌이 있다. 거북의 크기로는 국내 최대라고 평가받고 있다. 한 단계 올라서면 5층 석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보물 제95호이다. 탑의 형태로는 약간 불안한 모습이지만, 일반인들이 볼 적에는 그저 커다란 석탑이며 위압적으로 보일 뿐이다. 그 앞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호인 8각 석등이 있다. 각부가 잘 남아 있는 균형잡힌 석등으로 평가된다. 8각 석등의 화창에는 문틀 모양이 있고 그 안에는 여러 개의 못 구멍이 있는데 종이로 막았던 흔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4각 석등이 있다. 시대적으로 약간 뒤쳐지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형태가 독특하여 주목되고 있다. 8각 석등이나 4각 석등을 보면 앙련과 복련이 큼직하면서도 탐스럽게 펼쳐져 있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한 단을 더 높인 곳에 거대한 돌들을 쌓아 올려 높이 약 6m의 요형(凹形) 석벽을 구축하여 네모난 석실을 만들고 그 중앙에 보물 제96호 미륵석불입상을 안치하였다. 석실 윗부분은 목조 건물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지금은 많이 훼손된 상태인데 특히 전면 오른쪽 부분의 석재들 사이가 틈이 많이 벌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미륵석불입상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얼굴 부분이 다른 부위에 비하여 유난히 희다. 그 원인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불가에서는 종교적 관점에서, 반면 학자들은 과학적 분석을 취하고 있어 의견의 차이가 크다. 또 석실 내에는 큰 바위가 떨어져 있는데 홍수 시에 석실 위에서 굴러 떨어진 돌이라 한다. 헌데 이상하게도 석실과 미륵입상 사이에 절묘하게 떨어져 있어 어느 하나 손상됨이 없다. 이러한 현상을 우연으로만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여겨진다.

< 디지털충주문화대전 일부 발췌>

 

 

 

▲ 미륵리사지에서 포장도로를 잠깐 거슬러 오르자 하늘재-대광사 갈림길이 나온다.

 

 

▲ 잠시 호박돌이 깔린 길을 지나면 역사.자연관찰로로 들어선다. 원시림같은 나무숲에 묻혀 버린 역사.자연관찰로는 햇빛이 들지 않아 아직도 어둡기만 하다.  

 

  

일부러 포장도 하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옛길을 보존해 놓은 하늘재 가는 길은 하늘로 향하는 길처럼 신비스러운 기운마저 감돌게 한다.

 

 

▲ 하늘재 갈림길에서 20여분 걷다보면 연아를 닮은 나무도 만난다.

 

 

▲ 미륵리사지를 출발한지 30분만에 포장도로가 있는 하늘재에 도착한다. 관음리쪽에서 하늘재까지는 도로포장이 되어 있어 고개마루까지 차량이 올라 올 수 있지만, 반대로 미륵리쪽은 비포장으로 차량출입 금지구역이다. 관음리쪽은 개발이 되어 민가와 과수원 등이 들어서 있지만 미륵리쪽은 개발제한구역으로 보존되어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개발과 보존. 극명하게 엇갈리는 선택이 하늘재를 중심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다. 어느 선택이 옳은 것인가. 깊히 고민해 볼 문제이다.

 

 

▲ 지난 산행 날머리 탄항산, 주흘산에서 내려 오는 길을 살펴보고, 

 

 

▲ 오늘 산행 들머리 포암산 가는 길로 들어 선다.

 

 

▲ 들머리에서 7-8분 오르자 하늘샘을 만나, 목도 축이고 물도 보충한다. 

 

 

▲ 포암산 정상까지는 빡센 오름길이다. 산행 초반부터 땀을 쏟아가며 올라야 한다.

 

 

▲ 급경사 바위지대가 가쁜 숨을 몰아 쉬게 하는데

 

 

▲ 그래도 포암산이라 숨고르기 할 명분을 찾을 수 있도록 전망바위가 종종 나타난다. 

 

 

▲ 들머리 하늘재에서 50여분 걸려 돌탑이 있는 마당바위에 도착

 

 

▲ 관음리쪽 산줄기와 주흘산 주봉, 영봉을 조망해 본다.

 

 

 

▲ 좀 더 진행하자 나무가지 사이로 부봉 능선, 마역봉 능선, 미륵리쪽 박쥐봉 능선들도 보인다.

 

 

▲ 포암산 정상이 가까워 지자 평탄한 능선길도 나타나지만,

 

 

 ▲ 이내 철계단 등이 나타나며 고도를 높여 나간다.

 

 

 ▲ 철계단에서 또 조망이 트인다. 우측으로 월악산 영봉이 빼어난 모습을 드러내고, 저멀리 충주호도 살짝 보인다.

 

 

 ▲ 마역봉-신선봉 능선과 박쥐봉, 지릅재 너머까지 조망된다.

 

 

▲ 들머리 하늘재에서 1시간 10여분만에 돌이 쌓여 있는 포암산 정상에 도착한다

 

 

포암산 정상은 주변 잡목들이 사람 키보다 더 크게 자라서 인지 기대했던 조망은 터지지 않는다.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대로 주변 전망을 사진에 담아본다.

 

 

 ▲ 정상에서 40여분간 머무르며 주먹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휴식도 취한후 마골치(만수봉갈림길)을 향하여 출발한다.

 

 

포암산에서 마골치까지 관리공단 이정표가 0.5㎞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어 산행하기 편하지만, 대간길은 짙은 숲속에 묻혀 있어 한두곳을 제외하고는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앞으로 가야할 대간 능선을 잡아본다. 대간길은 마골치에서 90도 방향을 틀어 동진하게 되므로 이 곳에서 대간능선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 포암산 0.9㎞ 지점에 다다르자 사거리가 나타난다. 관음재라 한다.

 

 

▲ 이후 마골치까지 숲속길 이정표를 친구 삼아 계속 진행한다.

 

 

▲ 이정표가 나타나면 바뀐 숫자만 확인할 뿐 대간길은 똑 같은 모습이다.

 

 

마골치가 가까와 지면 잠시 오르막길이 나타나고

 

 

 ▲ 능선에 오르면 정비가 잘되어 있는 마골치에 도착한다. 마골치에서 대간길은 직진이므로 나무 울타리를 넘으면 되고, 만수봉은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 마골치에서 다시 고도를 높혀 937봉, 938봉에 이르면 지나온 대간길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를 만난다. 좌측부터 주흘산, 포암산, 마역봉-신선봉, 만수봉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 마골치에서 1032봉까지는 937봉-938봉-884봉-897봉-809봉-844봉-838봉으로 이어지는 4.9㎞ 정도의 짧지 않은 거리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되풀이 된다.

 

 

▲ 너널길이 있는가 하면 안부로 이어지고 다시 오르막이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 대간리본이 현란한 이름없는 봉우리에 오른다. 무언가 의미있는 봉우리인 것 같은데 지도를 확인해 봐도 알 수 없다. 시간상으로 마골치에서 대략 1시간 정도 진행했으니 지도상 897봉인 듯 싶다.

 

 

▲ 진행방향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이 없어 답답하던 차에 나무가지 사이로 드디어 1032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 돌무더기 서낭당을 지나고 

 

 

 ▲ 마당바위 전망대도 통과한다.

 

 

 다시 전망대가 나타나고 정상 부근에 너덜지대가 있는 1032봉이 뚜렷하게 조망된다.

 

 

▲ 지나온 포암산 대간길 능선과 주흘산, 관음리 전경이 그림과 같이 펼쳐져 한동안 머무르며 경치를 감상한다.

 

 

▲ 지도상 844봉, 838봉을 지나고 1032봉을 향해서 완만한 경사로 한참을 오른다.  

 

 

▲ 1032봉 정상 근처에 대간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너덜지대를 만난다. 포암산에서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하여 4시간이 지난 지금 슬슬 배도 고프고 1032봉도 힘들게 땀 흘려 올랐으니 쉬어가기 위해 너덜지대로 진입한다. 

 

 

▲ 정상 부근 너덜지대는 좌측으로 지나온 포암산 능선, 만수봉-월악산 능선뿐만 아니라 저멀리 하늘재와 마역봉 능선, 조령산 암봉능선까지도 조망이 되고, 우측으로는 제천시 덕산면에 있는 하설산-매두막 능선까지 조망할 수 있다. 1032봉 정상 부근 너덜지대는 오늘 산행의 최고 전망대이다.

 

 

 ▲ 너덜지대에 걸터 앉아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점심 식사를 한다. 서서히 운무가 내려 앉는 대간능선을 황홀하게 바라보며 "아! 오늘도 내가 대간길을 걷고 있구나" 새삼 백두대간 종주에 대한 새로운 감회가 물밀듯이 밀려 온다. 이런 곳에서 이런 장관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폭염과 장마를 무릅쓰고 걸어 왔던가? 꼭두새벽 도시락을 싸서 등짐에 메고 온종일 걸어도 사람 한사람 만나지 않던 대간길이 이런 장엄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던가?  이런저런 감회에 젖어 멀고 먼 대간길이 일순간 스치듯 지나가는 찰나처럼 느껴진다. 천천히 식사를 하며 파노라마 장관을 되풀이 둘러보며 지금껏 걸어왔던 대간길을 반추해 본다. 길고 길게 40여분간 점심을 마친후 다시 대간길로 복귀한다.    

 

 

 ▲ 너덜지대에서 대간길로 복귀하자 곧 바로 1032봉 정상에 다다르지만, 대간리본만 현란할 뿐 1032봉 정상은 솦속에 묻혀 조망이 없다.

 

  

▲ 1032봉을 지나면 1034봉, 1062봉이 연이어 나타나므로 고도차 없는 1천미터급 능선길을 한동안 기분좋게 걷는다.

 

 

▲ 1062봉을 지나면 부리기재를(875m) 향해서 편하게 고도를 낮추고 

 

 

▲ 스테인레스 이정표가 서있는 부리기재에 도착한다. 부리기재는 문경시 중평리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를 이어주는 고개라 한다.

 

 

▲ 부리기재에서 대미산 오르는 길은 급경사나 암릉지대가 없는 꾸준한 오름길이다. 육산 특유의 울창한 숲이 계속 이어지며 오름길이 계속 된다.

 

 

▲ 대미산을 향해서 오르는 중에 소나기가 내리려는지 갑자기 돌풍이 몰아치자 길옆 나무가지들이 땅으로 누울듯이 휘청거린다. 대간꾼이야 바람을 맞으니 시원해서 좋지만, 한편으로 운무가 몰려오니 조망이 트이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 부리기재에서 50여분 걸려 대미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은 잔디까지 심어져 있고 꽤 넓은 편으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주변 잡목이 키보다 더 크게 자라 있고 운무가 몰려와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잠시 둘러 본후 곧바로 차갓재를 향해서 출발한다. 산행지도를 살피다 여우목고개와 여우목마을이 눈에 띄어 자료를 찾아 본다.

 

화전을 부쳐 먹기가 좋아 많은 이들이 토막집을 짓고 비탈에 불을 놓던 시절 대미산은 소나무밭이었다고 한다. ‘잘살아보자’는 노랫소리가 새벽잠을 깨우던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무렵 그 많던 소나무는 사라졌다. 산판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수 십년, 대미산은 울창한 모습을 되찾았지만 정씨의 어린 시절 지천이었던 송이버섯을 지금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마을에서 송이가 언제 나는지 어디서 나는지 아는 사람조차 없다. 인근 마을에서 송이버섯으로 수백만원에서 천만원대에 이르는 소득을 올린다는 소문은 그야말로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마을 안에 들어선 하얀 십자가도 남의 일이기는 마찬가지다. 마을 앞에는 ‘천주교 성지 여우목’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1801년 신유교난이 터지면서 충청도 지방 천주교 신자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때 일부가 백두대간을 병풍처럼 두른 문경지방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문경지방의 험준한 산악지형은 관의 눈길을 피해 신앙과 목숨을 지키기에 적합한 곳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충청지방을 연결하는 요로인 문경새재가 지척이라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다른 신자들과 연결하기에 좋은 지리적 여건도 갖추고 있었다.
< 출처 : 한겨레21 "백두대간사람들" 글중에서 > 

 

 

▲ 대미산 정상에서 완만하게 내리막을 타면서 15분 정도 진행하자 눈물샘이 나타난다. 샘에서 물도 보충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재미있는 눈물샘의 유래도 읽어 본다.

 

 

 ▲  눈물샘에서 대간길로 다시 올라오자 또 다시 돌풍이 몰아치며 소나기가 한차례 내린다. 조용하기만 하던 대간길은 갑자기 소란스러워 지고, 숲속 자리꾼인 나무와 수풀들도 덩달아 춤을 춘다. 이들과 같이 할 수 없는 대간꾼은 소란스러움을 무시하며 앞길을 막는 나무가지들을 뿌리치면서 길을 재촉한다. 

 

 

▲ 눈물샘 이정표에서 10여분 약한 오르막을 진행하자 문수봉 갈림길인 1051봉에 도착한다. 문수봉 갈림길은 이정표가 3개나 있어 잠시 어리둥절 했지만, 살펴보니 나름대로 뜻이 있고 역할이 있는 이정표들로 그 만큼 산객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대간길은 문수봉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새목재까지 내리막을 타게 되고 826봉-981봉-923봉을 오르며 차갓재로 향한다. 

 

 

▲ 옛 방화선 흔적이 남아 있는 널찍한 대간길을 30여분 진행하자 이름모를 건장한 두나무가 한뼘도 안되는 땅을 두고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하늘을 향해서는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위해 양보없이 경쟁할 것이고, 땅밑에서는 한줌의 흙을 먼저 차지하려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다. 이 경쟁에서 패하는 자는 나뭇잎도 거두어 들이고 뿌리 성장도 멈춰야 할 것이다. 긴긴 시간 소리없이 벌어지는 싸움터를 숙연히 둘러본다. 이런 나무들을 통상 연리목이라 하던데 너무 아름답게만 바라보며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폭풍우에 쓰러진 나무들이 대간길을 가로질러 누워 있고, 그 나무들 사이로 대간길은 계속 된다.

 

 

▲ 옛 방화선을 따라 수풀을 헤쳐 나가며 981봉을 향해 오른다.

 

  

▲ 차갓재 가기전 가장 높은 봉우리 981봉이다. 봉우리 이름은 없지만 대간능선상 높은 봉우리임을 알려주려는 듯  많은 대간리본들이 걸려있다

 

 

▲ 981봉에서 5분 정도 내려오자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지석이 나오고

 

  

▲ 다시 30여분을 더 진행하자 송전탑이 대간길에 버티고 서있다. 이젠 차갓재가 지척이고 오늘 목적지 작은 차갓재도 얼마 남지 않았다.

 

  

▲ 송전탑에서 조금 더 진행하자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지석이 또 있는 차갓재에 도착한다. 차갓재는 동네 마을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백두대장군, 지리여장군 장승이 서 있어 마을 어귀로 들어 서는 기분이다.

 

 

 ▲ 차갓재에서 안생달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잠시 바라보고   

 

 

▲ 내일 산행을 위해 힘들더라도 작은 차갓재까지 가자며 달래고 얼러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더 넘는다. 헌데, 높지도 않은 마지막 봉우리 하나가 무척이나 힘들게 느껴진다.  오늘도 산행시간을 10시간을 훌쩍 넘기다 보니 산행 말미에 힘든건 어쩔 수 없나 보다. 

 

 

▲ 예상치 못한 작은 봉우리를 힘들게 넘으니 작은차갓재 이정표가 산행 종료를 알린다. 들머리 하늘재에서 10시간 40분정도 소요되었으니 오늘 산행도 짧은 산행은 아니었다. 

 

 

 ▲ 내일 아침 들머리 황장산 가는 길을 확인하고

 

 

 ▲  안생달 마을로 향하는 길로 들어 선다. 작은차갓재에서 안생달 마을까지는 1.1㎞로 골짜기를 따라 내리막을 타게 된다.

 

 

▲ 마을이 가까와 지자 출입구가 봉쇄된 폐광이 나타나고

 

 

 민박집으로 향하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오늘 산행은 폭염을 동반한 여름날씨는 한풀 껶여 그런대로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오름길에서는 땀께나 쏟아야 하는 산행이었다. 아직도 무더운 여름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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