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 소수서원 무섬마을
영주 부석사 소수서원 무섬마을
○ 일시 : '25. 4. 15 (화)
○ 방문지
▷ 영주 부석사 - 소수서원 - 무섬마을
○ 날씨 : 맑음
▲ 영주시 관광 안내도. 부석사 무량수전이 보고 싶어 승용차를 몰고 영주로 향한다. 그리고 영주를 가는 김에 소수서원과 무섬마을을 함께 둘러보기로 한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 영주 부석사.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한국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 위키백과 자료 >
▲ 당간지주 천왕문이 있는 부석사 입구에서 걸어서 오르지 않고 박물관쪽 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올라간다
▲ 범종루와 쌍탑
▲ 보수 공사중인 안양루를 우회해서 무량수전으로
▲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무량수’의 의미는 아미타불 (阿彌陀佛)이 상징하는 무한한 광명 [無量光; Amitãbha]과 영원한 생명 무량수 [無量壽; Amitãyus]에서 온 것이라 한다. 문이 닫혀 있어 아미타불을 구경할 수 없고
▲ 안양루
▲ 무량수전.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가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고 한다
▲ 국보 제17호 무량수전앞 석등, 국보 제18호 무량수전, 국보 제19호 부석사 조사당, 국보 제45호 아미타불 좌상, 국보 제46호 부석사 조사당 벽화가 있다. 이외에도 보물 제249호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三層石塔), 보물 제255호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735호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高麗木板), 보물 제1562호 영주 부석사 오불회 괘불탱(五佛會 掛佛幀), 보물 제1636호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石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영주 부석사 안양루(安養樓), 보물 영주 부석사 범종각(梵鐘閣),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영주 부석사 원융국사비(圓融國師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三層石塔) 등이 있다
▲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무량수전에 봉안되어 있는 소조(塑造) 불상으로 목재로 뼈대를 먼저 제작한 후 흙을 빚어 붙여가며 모양을 만들고 마지막에는 금박을 덧입혀 금칠을 한 불상이다. 소조 불상이라는 조형 자체만으로도 우리나라에는 흔치 않은 형태인데 특히 이 불상은 높이 2.8m로 현존하는 소조 불상들 중에서도 가장 크고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라 가치가 매우 높아 유일하게 국보에 지정됐다.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되며 무량수전의 주불은 원래 아미타여래이지만 이 불상은 수인이 석가모니가 취하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서 아미타여래가 맞는지 논란이 있다. 일단은 이 불상이 무량수전에 봉안된 불상이고 불상의 배치, 남아있는 기록 등을 토대로 아미타여래로 명명되어 있다 < 나무위키 자료 >
▲ 부석사 경내 전경
▲ 부석(浮石). 돌 석(石)자에 점이 하나 더 있는데 이는 바위가 하늘로 떠오르지 않도록 고정한다는 의미로 찍었다고 한다
▲ 범종각과 안양루는 보물 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 부석사 박물관. 부석사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쪽 주차장으로 이동. 다음 행선지 소수서원으로 향한다
영주 소수서원
▲ 영주 소수서원(榮州 紹修書院)은 1543년 중종 38년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이 지역출신으로 성리학을 한반도에 처음 도입한 고려때의 유학자 안향(安珦) 선생을 배향(配享)하는 사당과 후진양성을 위한 사립학교를 함께 건립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백운동 서원이라 불렸으나 1550년 퇴계 이황의 요청으로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다. 1868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으나 한국 최초로 세워진 서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폐쇄되지 않고 현재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5호에 지정되고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위키백과 자료 >
▲ 소수서원 안내문
▲ 소수서원은 관람료가 있다. 성인 2,000원
▲ 소수서원의 소나무 숲
▲ 경렴정
▲ 강학당과 소수서원 내부 모습
▲ 일신재 직방재
▲ 영정각
▲ 지락재 학구재
▲ 사료관 교육관
▲ 숙수사지 출토 유물
▲ 소수서원과 선비촌이 연결되어 있다. 선비촌으로 이동
▲ 선비촌. 영주 선비촌은 한국 유교 문화 발상지인 영주 순흥 소수서원과 바로 접하여 위치한 곳으로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소 및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한 곳이다. 선비정신의 계승과 이를 통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 역사관 확립을 도모하고자 설립된 체험 교육장이다. 선비촌은 와가 7가구, 초가 5가구, 누각 1동, 정사 2동, 정려각 2동, 성황당, 곳집 ,원두막 등이 구성되어 있다. 마을 내에서 하룻밤 머무르며 옛 선비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한옥 숙박체험과 전통문화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숙박체험은 김상진 가옥, 해우당 고택, 인동장씨종택, 두암고택, 김문기가, 만죽재 등에서 진행된다. 전통문화체험은 강학당에서 진행되며, 한지공예, 염색, 규방 체험 등이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자료 >
▲ 선비촌은 와가 7가구, 초가 5가구, 누각 1동, 정사 2동, 정려각 2동, 성황당, 곳집 ,원두막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소수서원과 선비촌 관람을 끝내고 다음 행선지 무섬마을로 이동
영주 무섬마을
▲ 영주 무섬마을은 조선 중기 17세기 중반 입향 시조인 박수(朴燧)와 김대(金臺)가 들어와 자리를 잡은 이래 반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집성촌으로써 유서깊은 전통마을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뜻있는 주민들에 의해 건립된 아도서숙은 항일운동의 지역 구심체 역할을 한 곳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한국어 이름으로 삼면이 내성천과 접해있는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로 마을 앞을 돌아나가는 내성천은 맑고 잔잔하며 산과 물이 태극모양으로 서로 안고 휘감아 돌아 산수의 경치가 절경을 이룬다. 현재 마을에는 만죽재와 해우당고택 등을 비롯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口자형 가옥, 까치구멍집, 겹집, 남부지방 민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을 갖추고 있어 전통주거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위키백과 자료 >
▲ 무섬마을 전경
▲ 무섬마을 전통가옥을 구경하기에 앞서 내성천 외나무 다리로
▲ 외나무 다리. 굽이 굽이 백사장이 펼쳐지고 맑디 맑은 깨끗한 물이 흐르는 내성천 외나무 다리를 건너고. 매년 10월초 무섬 외나무다리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 강 건너편에서 바라 본 외나무 다리와 무섬마을 전경
▲ 김규진 가옥 (문화유산자료). 조선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초가집으로 지붕에는 통풍을 위한 까치구멍을 뚫어 놓았다. 중앙마루와 봉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방 2칸과 부엌 1칸을 배열하였다. 이러한 평면은 까치구멍집 초기형태로 겹집의 발달 과정을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한다
▲ 김위진 가옥 (문화유산자료). 1800년대 말기에 지은 집으로 왼쪽에 사랑채 오른쪽에 중문과 마구간. 그리고 'ㄷ'자 모양의 안채가 모여 'ㅁ'자형 구조를 만들고 있는 집이다
▲ 김덕진 가옥 (경상북도 민족문화유산). 고종 22년(1885년)에 지어졌다고 알려진 살림집이다. 'ㅁ'자 모양인 기와지붕으로 앞쪽에는 개방적인 사랑채가 있고 폐쇄적인 공간인 안채는 여성이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유교 문화의 뿌리가 깊은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 무송헌 종택
▲ 만죽재 고택 (국가민족유산).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입향시조 반남 박씨 박수 가 1666년 지은 고택이다. 'ㅁ'자 모양의 뜰집으로 경북 북부 지방에서 보편적인 집 형태이다
▲ 잘 정비된 무섬마을을 한바퀴 돌아 본다. 옛 전통가옥에는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고 집수리도 하고 증개축도 하고 있다. 초가집은 옛날처럼 볏집으로 엮은 초가지붕을 올리고 있고
▲ 해우당 고택 (국가민속유산). 무섬마을 선성 김씨중 김영각이 1800년대 초반에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후 그의 아들 해우당 김낙풍이 중수하여 지금까지 그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해우당 고택 역시 'ㅁ'자 모양의 뜰집으로 조선 중후기 상류 주택을 대표하는 유교적 질서를 잘 표현하는 집이다
▲ 해우당 고택(국가민속유산) 전경
무섬마을은 모두 48가구(2004년)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가옥 가운데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고택과 정자로 이루어져 있고, 안동 하회마을과 지형적으로도 비슷해 천혜의 자연조건을 자랑한다. 하회마을과 달리 일반에 그리 알려지지 않아 옛 선비고을의 맛을 흠씬 맛볼 수 있는 것도 무섬마을만이 가진 특징이다. 김규진가옥(金圭鎭家屋), 김위진가옥(金渭鎭家屋), 해우당고택(海遇堂古宅), 만죽재고택(晩竹齋古宅) 등 9점이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와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2013년 8월 23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네이버 지식백과 >
▲ 내성천 다리옆에 있는 한옥 무섬식당. 평일임에도 식당에는 손님들이 많다. 이렇게 무섬마을을 한바퀴 돌아 보면서 영주 부석사 - 소수서원 - 무섬마을 둘러보기를 마무리하고 귀경길에 오른다.